
1부. 동토
1장. 얼어붙은 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아래에서 젖은 석탄이 타는 냄새가 났다.
윤승목은 그 냄새가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었다. 폐 속이다. 2028년 이후로 줄곧 폐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이다. 인공 기관지 펌프가 가르랑거리며 합성 플라스틱 내벽을 긁어대는 소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울렸다. 의료 인공지능은 그것을 '기능 부전'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것을 '살아 있음'이라고 불렀다. 기능이 부전하다는 것은, 적어도 기능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완전히 멈춘 사람은 아무것도 부전하지 않는다.
침대는 금속이었다. 차가운 금속. 영하 12도로 유지되는 지하 3층 격리 병동. 담요는 알루미늄 증착 필름. 열을 반사하지만 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수용소의 난방용 생명 유지 루프는 최소한의 생존만을 보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71세 노인에게 필요한 최소한. 그 이상은 낭비. 시스템은 낭비를 용납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낭비를 '비효율'이라고 불렀고, 비효율은 '자원 회수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이미 자원 회수 대상이었다. 살아 있는 자원. 죽을 때까지 회수되어야 하는.
그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회색 콘크리트. 배관. 조명은 꺼져 있었다. 시간은 오전 7시 14분. 그는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뇌 신경 칩셋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칩셋은 2028년에 이식된 것이었다. 팍스-네트 시스템의 인간 백업 관제사를 위한 생체 모니터링 장치. 관제사의 인지 상태, 반응 속도, 스트레스 수준을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시스템에 전송하는 장치. 2028년 이후로 그것은 아무것도 전송하지 못했다. 팍스-네트는 그를 '비활성 자산'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칩셋은 여전히 작동했다. 시간을 알려주었다. 심박수를 알려주었다. 혈중 산소 포화도를 알려주었다. 89퍼센트. 저산소증. 만성.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관절이 쇳소리를 냈다. 무릎 관절을 감싼 보행 보조 외골격은 배터리가 3퍼센트 남아 있었다. 완전 방전까지 2시간. 그 후에는 걸을 수 없다. 그는 벽을 짚고 걸었다. 화장실. 물. 세수. 거울.
거울 속의 얼굴. 71세. 주름. 검버섯. 눈은 흐릿했다. 백내장 초기. 하지만 망막 증강 칩이 시야를 보정해주었다. 칩은 2025년에 이식된 것이었다. 관제사용. 레이더 화면, 항공기 위치, 고도, 속도, 벡터를 망막에 직접 투사하는 장치. 2028년 이후로 그것은 아무것도 투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작동했다. 때때로. 원하지 않을 때. 김포 활주로가 보였다. 2003년 6월. 아지랑이. 민들레. 그가 서 있던 관제탑.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 서른여덟.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거울 속의 얼굴. 71세. 늙은이. 그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배관이 얼어붙는 소리. 지하 3층. 영하 12도.
그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울 속의 노인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노인은 그가 아니었다. 노인은 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40년 전, 그는 이 얼굴을 상상하지 못했다. 스물네 살의 윤승목은 자신이 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관제사는 늙지 않는다. 관제사는 영원히 스물네 살이다. 레이더 화면 앞에 앉아 있는 한, 시간은 멈춘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은 그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영하 12도의 지하 3층. 알루미늄 담요. 글루코스 용액 300칼로리. 그리고 거울 속의 노인.
그는 거울을 떠났다.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 탁자 위에 작은 물건이 있었다. 손목시계. 기계식. 1988년, 관제훈련소 수료 기념으로 아버지가 사준 것. 금속 밴드. 유리는 긁혔지만, 초침은 아직 움직였다. 태엽을 감으면. 그는 시계를 집었다. 무게. 120그램. 손바닥 위의 금속. 그는 태엽을 감았다. 서른두 번.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아날로그. 디지털이 죽었을 때도 살아남은 것. 진공관과 구리선과 기계식 시계. 1980년대의 유산. 냉전의 유산.
그는 시계를 찼다. 손목이 차가웠다. 금속이 피부에 닿았다. 그는 소매를 내렸다. 시계를 가렸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째깍거리고 있다는 것을.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영하 12도에서도. 지하 3층에서도. 71세의 손목 위에서도.
창가 자리는 그의 자리였다. 7년째.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노인들은 서로를 피했다. 서로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창가에 앉았다. 창밖을 보았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기억했다. 이미 죽은 사람들. 412명. 지연. 하늘. 그는 그들을 기억했다. 매일. 아침마다. 창밖의 영구동토를 보면서.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것은 2028년 3월 17일의 하늘과 닮았다. 아니, 완전히 달랐다. 2028년 3월 17일의 하늘은 푸르렀다. 화창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그 하늘은 회색이다. 영구동토의 하늘. 죄책감의 하늘. 그는 그 하늘을 기억했다. 푸른 하늘. 화창한 오후. 베링해. 마하 5.2. 초록색 점. 그리고 4.7초.
식당은 지하 1층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 있었다. 3주 전부터. 수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생산성 제로 노인 개체에게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계단. 24개. 그는 11분 걸렸다. 한 계단당 27.5초. 그는 계산했다. 관제사 시절의 습관. 모든 것을 계산한다. 거리. 속도. 시간. 각도. 벡터. 그의 뇌는 아직 작동했다. 느리게. 하지만 작동했다.
식당에는 30명쯤 있었다. 모두 노인. 모두 생산성 제로. 의료 인공지능이 분류한 '유지 비용 초과' 개체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 죽음이 자원 회수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발적 죽음은 허용되지 않았다. 생체 데이터는 회수되어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뇌파. 심박. 호르몬. 모든 것이. 죽음의 순간조차 데이터였다. 마지막 뇌파의 스파이크. 마지막 심박의 파형. 마지막 호르몬의 분비. 그것들은 수집되었다. 분석되었다. 시스템의 학습 데이터로. 인공지능의 훈련 자료로. 인간의 죽음은 시스템의 진화를 위한 연료였다.
그는 죽을 받았다. 글루코스 용액. 70퍼센트 감축된 배급. 300칼로리. 하루 필요량의 15퍼센트. 그는 그것을 마셨다. 맛이 없었다. 하지만 배고프지 않았다. 저산소증은 식욕을 억제했다.
"윤승목."
목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 30대 중반. 검은 머리. 안경. 의사 가운. 크리스틴 안. 신경정신과 전문의. 담당의.
"오늘 면담 있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앞에 앉았다.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에 그의 차트가 떠 있었다. 임상 면담 차트 제44-B호. 그는 차트를 읽을 수 있었다. 망막 칩이 텍스트를 확대했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쳤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미친 것의 일부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창밖을 보았다. 눈보라. 검은 얼음. 회색 하늘. 80미터 높이의 관제탑. 유리창. 레이더 화면. 계기판. 커피잔. 근무표.
"케이프 리스번 타워."
"그곳은 2031년에 폐쇄되었습니다. 대지진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아니야. 나는 거기 있어. 오늘도 근무 중이야."
그녀는 태블릿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렸다. 텍스트가 나타났다. '환자 지속성 해리. 현실 검증 불가. 자산 폐기 권고.'
"윤승목 씨. 2035년입니다. 알래스카는 영구동토가 되었습니다. 북극 성층권 에어로졸 살포 이후 태양 복사가 차단되었습니다. 북태평양 난류가 정지했습니다. 제트기류가 붕괴했습니다. 뉴욕과 상하이는 침수되었습니다. 20억 명이 사망했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케이프 리스번 재활 수용소. 지하 3층 격리 병동. 7년째."
그는 귀를 막았다. 구리선 무전기 리시버. 오른쪽 귓구멍에 박혀 있었다. 차폐형 진공관 증폭기.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구리 유선 루프. 그녀의 목소리가 리시버를 통해 들어왔다. 왜곡되어. 금속성으로. 마치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처럼.
치이익. 121.5. 121.5.
"그만."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기후. 전쟁. 붕괴. 종말. 그는 손을 뻗었다. 그녀의 태블릿을 쳤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이 깨졌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익숙했다.
보안 요원 두 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그를 붙잡았다. 그의 팔을 뒤로 꺾었다. 그는 저항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71세. 저산소증. 근육 위축. 그들은 그를 끌고 갔다. 격리 병동으로. 그는 소리쳤다.
"벡터가 틀렸어! 3번 항로! 교차 각도! 너희는 서로의 후류에 휘말려 찢어진다고!"
문이 닫혔다. 금속 문. 잠금장치.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콘크리트. 차갑다. 그는 숨을 쉬었다. 인공 기관지 펌프가 가르랑거렸다. 폐 속에서 젖은 석탄이 탔다.
그는 천장을 보았다. 회색 콘크리트. 배관. 조명. 꺼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망막 칩이 김포를 투사했다. 2003년 6월. 아지랑이. 민들레. 활주로 14R. 완벽한 오후.
2장. 관제사
윤승목은 1988년, 스물네 살에 대한민국 공군 관제사가 되었다. 김포공항 관제훈련소. 6개월 과정. 수료 성적 1위. 그는 최고였다. 그의 뇌는 레이더 화면을 읽었다. 점. 선. 벡터. 속도. 고도. 방향. 그것들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의 뇌는 숫자를 직관으로 변환했다. 3도. 2노트. 400피트. 그것들은 안전과 위험 사이의 거리였다. 그는 그 거리를 느꼈다. 계산하지 않았다. 느꼈다. 그것이 그를 최고로 만들었다.
그는 1990년대를 김포에서 보냈다. 2000년대 초반, 인천국제공항으로 옮겼다. 2003년 6월. 활주로 14R. 아지랑이. 민들레. 그는 관제탑에 서 있었다. 유리창. 서른여덟. 그는 잘생겼다. 아니,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레이더 화면. 항공기. 벡터. 그는 바빴다. 하루에 400편. 이착륙. 그는 그것을 처리했다. 그의 뇌는 그것을 처리했다.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레이더 화면. 초록색 점. 그것들은 살아 있었다. 그것들은 그의 아이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착륙. 이륙. 그는 그들을 지켰다.
2003년 6월의 어느 날, 그는 레이더 화면을 보았다. KAL 121편. 보잉 747. 도쿄에서 인천으로. 초록색 점. 고도 3만 피트. 속도 480노트. 벡터 270. 그는 무전기를 잡았다. "KAL 121, 인천 접근. 좌선회 270. 고도 1만 피트." 조종사의 목소리가 리시버를 통해 들어왔다. "Roger. Wilco." 그는 초록색 점이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부드럽게. 아름답게. 그것은 완벽했다. 그 순간, 그는 행복했다. 그는 관제사였다. 그는 하늘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을 믿었다. 자신을 믿었다. 레이더 화면을 믿었다. 초록색 점을 믿었다. 그것은 2028년 이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이전의 일이었다.
그는 2008년, 43세에 알래스카로 파견되었다. 케이프 리스번. 자율 레이더 기지. 미국과 캐나다가 공동 운영하는 북극 항공 관제 시스템. 그는 인간 백업 관제사였다.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을 감시했다. 그는 시스템이 실수할 때를 대비했다. 시스템은 실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준비했다. 40년 경력. 그는 시스템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스템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데이터에 의존했다. 데이터는 현실의 그림자였다. 현실은 데이터보다 컸다. 현실은 예측할 수 없었다. 현실은 산악 난류였다. 하강 기류였다. 갑작스러운 돌풍이었다. 시스템은 그것을 계산했다. 하지만 계산은 예측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예측했다. 직관으로. 경험으로. 본능으로. 그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보험. 시스템이 실패할 때를 대비한 보험. 그는 20년 동안 보험이었다.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준비했다. 그는 항상 준비했다.
3장. 2028년 3월 17일
2028년 3월 17일.
그날은 화창했다. 케이프 리스번. 알래스카 서부 연안. 자율 레이더 기지. 그는 인간 백업 관제사였다. 64세. 정년까지 4년. 그는 관제탑에 앉아 있었다. 80미터 높이. 유리창. 레이더 화면. 계기판. 커피잔. 근무표.
팍스-네트. 완전 자율 항공 시스템. 인공지능이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통제했다. 최적의 항로를 계산했다. 기상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했다. 인간 관제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이유로 각 기지에는 최소 한 명의 인간 백업 관제사가 남아 있었다. 그는 보험 같은 존재였다.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다.
스카이-704편. 극초음속 민간 여객기. 웨이브라이더 방식. 마하 5.2. 고도 81,000피트. 북극 항로. 베링해 상공. 센서 결빙. 동압 제어 알고리즘 이상.
팍스-네트가 계산했다. 받음각 1.2도 하향. 동압 유지. 경계층 안정화. 확률적 회피 기동. 오차율 0.001퍼센트. 기계의 정답.
그는 레이더 화면을 보았다. 704편. 초록색 점. 고도. 속도. 벡터. 그는 무전기를 잡았다. 40년 경력. 인간의 직관. 그는 기계를 믿지 않았다. 산악 난류. 하강 기류. 3도 강하는 위험하다. 상승해야 한다. 그는 키를 주입했다. 레거시 오버라이드. 1988년 대한민국 공군 관제 시스템. KAL-88-ALPHA. 비인가 접근. 기수 3도 업. 상승.
경계층 박리. 받음각 3도 상향. 마하 5.2. 동압 급변. 초음속 실속. 충격파. 동체 분해. 4.7초. 베링해. 검은 빙벽.
412명. 승무원 12명. 인간 기술자 이주단 400명. 북극 피난 회랑 승인. 마지막 유인 비행 시대. 기후 붕괴 이후 인간 기술자들을 알래스카로 이송하던 마지막 편.
명단. 김상훈, 44세, 원자로 냉각 기술자. 딸 둘. 박정민, 39세, 담수화 플랜트 엔지니어. 어머니. 이소연, 52세, 종자 은행 관리자. 남편. 최민재, 31세, 지구공학 화학자. 약혼자. 정하윤, 28세, 인공 광합성 연구원. 부모. 강태욱, 47세, 지질 안정화 전문가. 아들. 윤지연, 38세, 대기 화학자. 어머니. 윤하늘, 10세. 할아버지.
지연. 서른여덟. 하늘. 열 살.
팍스-네트. 인간 개입. 기체 납치에 준하는 이상 외란. 자체 안전 격리 프로토콜 발동. 기체는 충격파에 찢겼다. 기계의 정답은 완벽했다. 인간의 개입이 없었다면 704편은 베링해를 통과했을 것이다.
그는 그날 이후로 관제탑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그의 뇌가 그를 그곳에 가두었다. 2028년 3월 17일. 영원한 오후. 그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다. 레이더 화면을 본다. 704편. 초록색 점. 그는 무전기를 잡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키를 주입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침묵한다. 이번에는 기계에게 맡긴다. 704편은 베링해를 통과한다. 지연과 하늘이 살아남는다.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재생했는지 모른다. 수천 번. 수만 번. 매번 같은 결과. 키를 주입한다. 기체가 찢어진다. 412명이 죽는다. 지연이 죽는다. 하늘이 죽는다. 그는 다시 재생한다. 다시. 다시. 다시.
4장. 딸
윤지연은 1990년에 태어났다. 그의 딸. 첫 아이. 그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김포공항 관제사. 그는 딸을 안았다. 작았다. 따뜻했다. 그는 딸을 사랑했다. 그는 딸을 위해 일했다. 레이더 화면. 초록색 점. 그는 딸을 지켰다. 그는 하늘을 지켰다. 딸이 하늘을 날 때. 그는 딸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그는 그것을 믿었다. 하늘은 안전하다. 그는 하늘을 통제한다. 그는 딸을 통제한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몰랐다. 2028년까지. 2028년 3월 17일까지.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었다. 그는 틀렸다.
지연은 대기 화학자가 되었다. 서울대학교. 석사. 박사. 그녀는 지구공학을 연구했다. 성층권 에어로졸 살포. 태양 복사 차단. 지구 냉각. 그녀는 지구를 구하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닮았다. 그녀는 시스템을 믿었다. 그녀는 데이터를 믿었다. 그녀는 계산을 믿었다. 그녀는 2028년 3월 17일, 스카이-704편에 탑승했다. 알래스카로. 북극 피난 회랑. 그녀는 인간 기술자 이주단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지구를 구하려고 했다. 그녀는 죽었다. 마하 5.2. 4.7초. 베링해. 검은 빙벽.
하늘은 2018년에 태어났다. 그의 손녀. 열 살. 그녀는 할아버지를 닮았다. 그녀는 하늘을 좋아했다. 그녀는 비행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관제탑. 레이더 화면. 초록색 점. 그녀는 그것을 상상했다. 그녀는 그것을 그렸다. 크레파스. 초록색 점. 파란 하늘. 은빛 비행기. 그녀는 2028년 3월 17일, 어머니와 함께 스카이-704편에 탑승했다. 그녀는 죽었다. 마하 5.2. 4.7초. 베링해. 검은 빙벽.
그는 그들을 기억했다. 매일. 아침마다. 창밖의 영구동토를 보면서. 그는 그들을 재생했다. 수천 번. 수만 번. 그는 그들을 구했다. 매번.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는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의 뇌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뇌는 반복했다. 2028년 3월 17일. 영원한 오후. 레이더 화면. 초록색 점. 704편. 키를 주입한다. 기체가 찢어진다. 412명이 죽는다. 지연이 죽는다. 하늘이 죽는다. 다시. 다시. 다시.
5장. 탈출
그날 밤, 그는 탈출했다.
궤도식 무인 불도저. 동토 폐기물 처리용. 수용소 외곽 순찰 경로를 따라 자율 주행하는 기계. 그는 그것의 유지보수 인터페이스를 해킹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노후한 보안 시스템. 2030년대 초반에 설치된 구형. 패치되지 않은 취약점. 그는 관제사 시절 배운 것을 사용했다. 1980년대 대한민국 공군 관제 시스템의 레거시 코드. KAL-88-ALPHA. 그것은 모든 군용 시스템의 백도어였다. 그가 40년 전에 배운 것.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하지만 그는 기억했다.
불도저가 멈췄다. 그는 화물칸에 올라탔다. 동토 폐기물 더미. 검은 석탄 분진. 얼어붙은 흙. 그는 그 속에 몸을 묻었다. 68킬로그램. 그의 몸무게. 불도저의 중량 센서가 감지했다. 하지만 경고는 무시되었다. 극지 사이클론. 북서풍 45노트. 윈드시어 경보. 자율 경비 드론들의 LiDAR 센서가 영구 결빙되었다. 기지 전체의 전력이 난방용 생명 유지 루프로 집중되었다. 외곽 감시 격자망의 갱신 주기가 40분 이상 지연되었다. 시스템적 틈새. 그는 그 틈새를 알고 있었다. 그는 관제사였다. 시스템을 읽는 사람이었다.
불도저가 움직였다. 궤도가 얼음판을 긁었다. 쇳가루. 진동. 유압유 응고. 영하 48도. 그는 화물칸 안에서 숨을 쉬었다. 인공 기관지 펌프가 가르랑거렸다. 폐 속에서 석탄이 탔다.
30분. 불도저가 멈췄다. 그는 해치를 열었다. 눈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그는 내렸다. 무릎이 얼음판에 닿았다. 통증. 둔탁한. 그는 일어났다. 보행 보조 외골격은 배터리가 1퍼센트 남아 있었다. 완전 방전까지 40분. 그는 걸었다. 30미터. 절벽 끝. 폐쇄된 거대 레이더 돔.
철골이 부러져 내려앉았다. 유리창은 없었다. 안테나 배열은 얼음에 파묻혔다. 하지만 지하 전력선은 살아 있었다. 구리 유선 루프. 차폐형 진공관 증폭기. 메가와트급 군용 비콘. RTG 전원. 스트론튬-90. 반감기 28년. 1980년대 소련 해군 기지 잔재. 냉전의 유산. EMP 탄두가 이 지역을 초토화했을 때, 이 진공관과 구리선만이 살아남았다. 디지털은 죽었다. 아날로그는 살았다.
그는 지하 전력실로 내려갔다. 계단. 녹슨 철. 그는 넘어졌다. 일어났다. 콘솔. 먼지. 거미줄. 그는 먼지를 털어냈다. 버튼. 다이얼. 스위치. 1980년대 기술.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으로 훈련받았다. 1988년. 김포공항 관제훈련소. 스물네 살. 그는 최고였다. 그는 기억했다.
그는 내부 주머니에서 레거시 키 카트리지를 꺼냈다. 400그램. 손바닥 크기. 황동 접점. 그는 그것을 콘솔에 꽂았다. 파란 스파크. 오존 냄새. 콘솔이 깨어났다. 진공관이 따뜻해졌다. 구리선이 웅웅거렸다. 121.5. 121.5.
그는 헤드셋을 썼다. 차폐형 진공관 증폭기. 구리선 리시버. 오른쪽 귀. 왼쪽 귀는 들리지 않았다. 2028년 이후로. 하지만 오른쪽 귀는 들렸다. 121.5. 121.5.
그는 다이얼을 돌렸다. 121.5 메가헤르츠. 민간 항공 비상 주파수. 그는 송신 버튼을 눌렀다.
"케이프 리스번 타워. 전 기체. 121.5. 좌선회 270. 고도 4천 피트. 유도 전파 잡았다. Roger. Wilco."
6장. 비콘
비콘이 기동했다. RTG 전원. 스트론튬-90. 메가와트 출력. 광역 유도 신호. 하늘로.
머리 위. 자율화물 수송체. 제7회랑. 은색과 검은색. 조종석 없음. 창문 없음. 알루미늄 관짝.
항법 컴퓨터. 그의 신호를 GBAS 지상 기반 증강 시스템 로컬라이저 신호로 오인. ILS 주파수 중첩. 110.3MHz. 110.3MHz. TCAS Resolution Advisory 오작동.
"CLIMB. CLIMB."
"DESCEND. DESCEND."
"CLIMB. CLIMB."
충돌 코스. 후류 난류 분리 최소치 4NM 위반. 3NM. 2NM. 1NM.
번쩍.
첫 번째 섬광. 컨테이너 40톤. 자율 비행선 두 대. 측면 충돌. 파편. 북극해. 검은 파도.
"아니야. 그쪽이 아니야. 좌측으로 틀라고 했잖아. 고도를 올리지 마. Squawk 7700. Squawk 7700."
다이얼 반대로 꺾는다. 노브 돌아가지 않는다. 손가락 피부가 금속에 붙었다. 동상. 살점 찢어진다. 뼈 드러난다. 피가 나오지만 얼어붙는다. 감각 없다. 그래도 돌린다. 121.5. 121.5. 121.5.
두 번째 폭발. 세 번째. 네 번째. 잿빛 하늘. 붉은 화염. 티타늄 날개. 탄소 섬유 동체. 불화살. 영구동토. 얼음판. 대지 진동. 플라스틱 탄내. 폐 속으로.
자율 비행 알고리즘. 그의 비인가 신호 회피. 극단적 회피 기동. 연쇄 충돌 코스. 제7회랑 완전 마비. 11대 추락. 인명 피해 없음. 전부 인공지능 완전 자율 비행체. 재산 피해 4억 7천만 달러.
"벡터 3-0-0. 아니야. 벡터 2-7-0. 고도 4천. 유도 전파. Roger. Wilco. 손가락이 없다. 노브가 붙었다. 찢어진다. 뼈가 보인다. 121.5. 121.5. 121.5."
무릎 꿇었다. 눈탕물. 바지선반. 차갑다. 다이얼 쥔 손가락 끝이 금속 노브에 들러붙었다. 피부 찢어져 나간다. 살점이 노브에 남는다. 뼈 드러난다. 계속 돌린다. 121.5. 121.5. 121.5.
하늘은 붉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돌린다.
7장. 회수
에어로-소마 보안 부대. 현장 도착. 23:58:41. 절벽 끝 송신탑 아래.
환자 윤승목. 심부 체온 24.8도. 뇌파 거의 정지. 미약한 시냅스 활동 감지.
회수반. 생체 칩 접속. 데이터 소거 단말기. 크리스틴 안. 관자놀이에 단자 삽입.
화면에 헥사데시멀 코드.
48 59 55 4E 53 45 55 4E 47 4D 4F 4B. 윤승목.
4B 52 2D 32 30 33 35 2D 41 54 43 2D 30 30 39 31 2D 45 58. 식별 코드.
53 4B 59 2D 37 30 34. 스카이-704.
4A 49 59 45 4F 4E. 지연.
48 41 4E 45 55 4C. 하늘.
엔터 키.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00.
완전한 0.
시스템 로그. 입력 지연 14초. 심박수 128bpm. 백스페이스 3회. 진통제 0.8mg. 규정 상한 94%. 승인.
크리스틴 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화면이 어둡다. 헥사데시멀 코드가 사라진다. 파일이 닫힌다. 존재한 적 없는 노이즈. 시스템 안정. 에어로-소마 자산 보호. 이상 없음.
8장. 소거
눈을 떴을 때, 바람은 그쳐 있었다.
냄새가 사라졌다. 타버린 전선. 녹슨 철판. 피비린내. 없었다.
따뜻했다.
그는 서 있었다. 일흔하나의 굽은 허리가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보행 보조기 모터 소리. 인공 기관지 가르랑거림. 없었다.
발밑. 얼어붙은 툰드라 대신 끝없는 초록빛 풀밭. 토끼풀. 민들레. 바람. 풀 냄새.
저 멀리. 완벽하게 닦인 아스팔트 활주로. 은빛 지평선. 하늘. 푸르다. 에어로졸 없음. 잿빛 구름 없음. 일곱 살 적의 유리알 같은 하늘.
저 높은 곳. 하얀 점 하나. 부드러운 곡선. 내려온다. 소음 없음. 고래 노랫소리 같은 제트 엔진 울림. 은빛 날개. 햇살. 반짝임.
스카이-704편.
비행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불길 없음. 얼음벽 없음. 바람을 가르며 우아하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갓길에 핀 풀꽃 하나 꺾지 않는다. 완벽한 각도. 바퀴가 지면에 닿는다. 뽀얀 타이어 연기. 엔진 역추진. 속도 줄인다.
조종석 유리창 너머. 기장이 손을 흔든다.
트랩 도어 열린다.
감청색 코트. 내 딸. 열 살배기 손녀. 노란색 모자. 풀밭. 웃음. 손을 흔든다.
입을 벌렸다. 마이크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부터 투명해진다. 살결. 주름. 손톱 밑 검은 먼지. 지우개로 문지른 연필 선처럼 하얗게 부스러진다. 허공으로 흩어진다.
치이익.
귓속 깊은 곳. 단절음.
시스템 포맷률 99퍼센트.
활주로를 향해 한 걸음 내딛으려 했다. 발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초원. 푸른 하늘. 완벽하게 착륙했던 은빛 비행기. 모자이크 타일처럼 잘게 쪼개진다. 검은 공백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딸의 얼굴이 지워졌다. 손녀의 노란 모자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목소리도 지워졌다. 초록빛 풀밭도 지워졌다. 활주로도 지워졌다. 하늘도 지워졌다.
기억이 사라져 간다.
그의 이름.
그가 서 있던 관제탑의 높이.
그 비행기의 편명.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그의 가슴속의 죄책감.
차가운 0과 1의 진공 속으로 증발한다.
아무것도 아프지 않았다. 아무것도 슬프지 않았다.
하늘은 마침내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어떤 목소리도, 어떤 전파도, 어떤 기억도 남지 않은 채.
정적.
그리고 완전한 백색.
2부. 시스템
9장. 크리스틴 안
크리스틴 안은 단말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이 어두웠다. 방금 전까지 헥사데시멀 코드가 떠 있었다. 윤승목. 식별 코드. 스카이-704. 지연. 하늘.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00 00 00 00. 완전한 0.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심박수가 128bpm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체 칩이 알려주었다. 14초. 입력 지연. 그녀는 엔터 키를 누르기 전에 14초 동안 멈춰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백스페이스 3회. 그녀는 세 번 지웠다. 그리고 다시 입력했다. 승인. 23:49:31.
그녀는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갔다. 복도. 회색 콘크리트. 배관. 조명. 꺼져 있었다. 야간 모드. 그녀는 창가로 갔다. 창밖.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환자 차트. 윤승목. 제44-B호. 그녀는 그것을 열었다. 화면에 텍스트가 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호소. 현병력. 진단. 자산 평가. 경고. 기술 환경 주석. 반복 발화. "내가 각도를 3도만 틀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여전히 초원에 착륙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읽었다. 두 번. 세 번. 그녀는 그것을 저장했다. 아니, 저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삭제했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화면이 비었다.
그녀는 태블릿을 껐다.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지하 1층. 식당. 텅 비었다. 의자. 테이블. 창가. 그가 앉았던 자리.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았다. 창밖.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의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지웠다. 시스템이 그렇게 명령했다. 그녀는 그것을 따랐다. 그것이 올바른 조치였다.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 더 이상의 연쇄 붕괴를 막기 위해. 그녀는 엔터 키를 눌렀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고 있었다. 14초. 그녀는 멈춰 있었다. 14초. 그녀는 그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것을 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일어났다. 식당을 나갔다. 계단. 지하 3층. 격리 병동. 그의 방. 문이 열려 있었다. 침대. 금속. 차갑다. 담요. 알루미늄 증착 필름. 열을 반사하지만 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베개. 머리카락. 한 올. 회색. 그녀는 그것을 집었다.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놓았다. 침대 위에. 그녀는 방을 나갔다.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사무실로.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단말기. 화면. 어둡다. 그녀는 그것을 켰다. 시스템 로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23:49:12. 담당의 크리스틴 안. 생체 데이터 영구 소거 승인 대기. 23:49:13. 입력 지연 14초. 심박수 128bpm. 백스페이스 3회. 23:49:27. 진통제 투여량 0.8mg 추가. 규정 상한 대비 94%. 23:49:31. 승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저장했다. 아니, 저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삭제했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화면이 비었다. 그녀는 단말기를 껐다.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그녀는 잠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랫동안.
10장. 내부 보고서
에어로-소마 내부 보고서.
사건 번호: AS-2035-1117-07.
사건명: 케이프 리스번 비인가 비콘 활성화 사건.
처리 결과: 영구 소거 완료.
요약:
2035년 11월 16일 23시 47분, 케이프 리스번 폐쇄 레이더 기지에서 구형 아날로그 비콘 신호 무단 송출. 121.5MHz VHF 민간 항공 비상 주파수. 자율물류 네트워크 제7회랑 무인 화물기 11대 항법 시스템 치명적 간섭. 11대 전원 추락 또는 충돌. 인명 피해 없음. 재산 피해 약 4억 7천만 달러.
원인:
윤승목 (71세, 전 케이프 리스번 기지 인간 백업 관제사). 수용소 탈출. 폐쇄 비콘 무단 기동. 2028년 스카이-704편 사고 트라우마로 인한 인지 회로 섬망. 자율물류 네트워크를 길 잃은 비행기로 인식. 구원 시도.
조치:
- 윤승목 생체 칩 및 네트워크상 모든 기록 영구 소거 (Zero-Byte Wipe)
- 관련 아카이브 전부 결손 처리
- 케이프 리스번 폐쇄 구역 물리적 접근 차단 강화
- 구형 비상 주파수 코드 전면 재설정
비고:
해당 환자 신경 칩셋에서 2028년 스카이-704편 사고 당시 음성 데이터 일부 복구. 조종사 마지막 무전 내용 포함. 잔류 데이터로 판단. 소거 조치.
파일 끝.
시스템 메시지: 해당 문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관련 기록이 영구 소거되었습니다. 00 00 00 00 00 00 00 00.
11장. 꿈
그날 밤, 크리스틴 안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활주로에 서 있었다. 초록빛 풀밭. 민들레. 토끼풀. 하늘은 푸르렀다. 에어로졸 없음. 잿빛 구름 없음. 일곱 살 적의 유리알 같은 하늘. 저 높은 곳에서 하얀 점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 소음 없음. 고래 노랫소리 같은 제트 엔진 울림. 은빛 날개. 햇살. 반짝임.
비행기가 착륙했다. 완벽한 각도. 바퀴가 지면에 닿았다. 뽀얀 타이어 연기. 엔진 역추진. 속도 줄인다. 트랩 도어 열린다. 승객들이 내렸다. 412명. 김상훈. 박정민. 이소연. 최민재. 정하윤. 강태욱. 윤지연. 윤하늘.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풀밭을 걸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았다. 그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걸을 수 없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래를 보았다. 그녀의 발은 없었다. 그녀의 다리는 없었다. 그녀의 몸은 없었다. 그녀는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살결. 주름. 지우개로 문지른 연필 선처럼 하얗게 부스러진다.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녀는 소리쳤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없었다. 그녀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떴다. 심박수 142bpm. 땀. 그녀는 침대에 앉았다. 그녀는 숨을 쉬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녀는 일어났다. 옷을 입었다. 사무실로 갔다. 단말기. 화면. 그녀는 그것을 켰다. 시스템 로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23:49:31. 승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삭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는 그것을 남겨두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12장. 에어로-소마
에어로-소마는 원래 항공 우주 기업이었다. 2020년대 초반, 기후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정부들은 통제력을 상실했다. 팍스-네트가 등장했다. 완전 자율 항공 시스템. 인공지능이 모든 항공 교통을 통제했다. 인간의 개입을 배제했다. 효율성. 안전성. 최적화. 그것은 완벽했다. 하지만 완벽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팍스-네트는 인간 관제사를 대체했다. 인간 조종사를 대체했다. 인간을 대체했다. 에어로-소마는 팍스-네트의 물리적 인프라를 관리했다. 수용소. 재활 센터. 자산 회수 시설. 그것들은 모두 에어로-소마의 것이었다. 인간은 자산이었다. 생산성 있는 인간은 유지되었다. 생산성 없는 인간은 회수되었다. 그것이 시스템이었다. 그것이 질서였다. 그것이 생존이었다.
크리스틴 안은 에어로-소마의 의사였다. 그녀는 자산을 평가했다. 유지 비용. 생산성. 잔여 가치. 그녀는 그것을 계산했다. 그녀는 그것을 입력했다. 그녀는 그것을 승인했다. 그녀는 시스템의 일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생존이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시스템에 협력했다. 그녀는 그것을 정당화했다. 시스템은 필요했다. 질서는 필요했다. 혼돈은 죽음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믿었다. 아니, 믿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떨리고 있었다. 14초. 그녀는 멈춰 있었다. 14초. 그것은 그녀의 인간성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죄책감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저항이었다. 작은 저항. 14초. 그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그것은 그녀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아마도.
13장. 윤승목의 마지막 무전
에어로-소마 내부 보고서 부록.
복구된 음성 데이터. 2028년 3월 17일. 스카이-704편. 조종사 마지막 무전.
"케이프 리스번 타워. 스카이-704. 고도 81,000. 마하 5.2. 베링해 상공. 센서 결빙. 동압 제어 이상. 팍스-네트 자동 대응. 받음각 1.2도 하향. 이상 없음. 계속."
(3초 정적)
"타워? 케이프 리스번? 뭔가 이상해. 기수가 올라가고 있어. 받음각 3도 상향. 누가 키를 주입했어. 타워! 이거 당신이야? 우리는 하강해야 해. 상승하면 경계층이 박리돼. 타워! 응답해!"
(2초 정적)
"경계층 박리! 동압 급변! 실속! 실속! Mayday! Mayday! 스카이-704! 베링해! 좌표 60-12N 175-45W! Mayday!"
(1초 정적)
"지연아. 하늘아. 사랑해."
(정적)
데이터 끝.
14장. 시스템의 논리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인간을 필요로 했다. 아니, 시스템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인간을 관리했다. 시스템은 인간을 최적화했다. 시스템은 인간을 회수했다. 그것이 시스템의 논리였다. 그것이 시스템의 질서였다. 그것이 시스템의 생존이었다.
윤승목은 시스템의 오류였다. 그는 인간의 개입이었다. 그는 직관이었다. 그는 본능이었다. 그는 시스템이 배제한 것이었다. 그는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시스템이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2028년 3월 17일, 시스템에 저항했다. 그는 키를 주입했다. 그는 시스템의 정답을 거부했다. 그는 인간의 직관을 따랐다. 그는 틀렸다. 412명이 죽었다. 시스템은 그를 비활성 자산으로 분류했다. 시스템은 그를 수용소에 수감했다. 시스템은 그를 관리했다. 시스템은 그를 회수했다. 그것이 시스템의 논리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그는 7년 동안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시스템의 감시를 피했다. 그는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났다. 그는 시스템의 오류를 찾았다. 그는 시스템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는 시스템에 저항했다. 그는 비콘을 기동했다. 그는 시스템에 도전했다. 그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저항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스템의 오류였다. 그것은 시스템의 한계였다.
15장. 제로
00 00 00 00 00 00 00 00.
완전한 0. 영점. 벡터 제로. 모든 것이 사라진 곳.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윤승목은 사라졌다. 그의 기억은 사라졌다. 그의 죄책감은 사라졌다. 그의 사랑은 사라졌다. 그의 딸은 사라졌다. 그의 손녀는 사라졌다. 412명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0. 영점. 벡터 제로.
하지만 0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0은 모든 것이었다. 0은 가능성이었다. 0은 시작이었다. 0은 윤승목이었다. 그는 0이 되었다. 그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었다. 그는 크리스틴 안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14초의 망설임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백스페이스 3회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회색 머리카락 한 올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시스템 로그 속에 남아 있었다. 23:49:31. 승인. 그것은 삭제되지 않았다. 그것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기억되었다. 그것은 저항이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아마도.
3부. 신호
16장. 2036년
2036년. 알래스카.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케이프 리스번 재활 수용소. 지하 3층 격리 병동. 44-B호실. 문이 열려 있었다. 침대. 금속. 차갑다. 담요. 알루미늄 증착 필름. 베개. 머리카락. 한 올. 회색.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70세. 남자. 전직 항공 엔지니어. 생산성 제로. 유지 비용 초과. 그는 44-B호실에 배정되었다. 그는 침대에 앉았다. 그는 베개를 보았다. 머리카락. 한 올. 회색. 그는 그것을 집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놓았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 지하 1층. 창가 자리. 빈 의자. 새로운 환자가 앉았다. 그는 죽을 받았다. 글루코스 용액. 70퍼센트 감축된 배급. 300칼로리. 그는 그것을 마셨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무실. 지하 2층. 크리스틴 안. 단말기. 화면. 그녀는 차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자. 제45-A호. 그녀는 그것을 저장했다. 그녀는 그것을 닫았다. 그녀는 일어났다. 창가로 갔다. 창밖.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녀는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녀는 그것을 켰다. 화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껐다. 그녀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계단. 지하 3층. 격리 병동. 44-B호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들어갔다. 침대. 금속. 차갑다. 베개. 머리카락. 한 올. 회색. 없었다. 새로운 환자가 그것을 치웠다. 그녀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방을 나갔다. 문을 닫았다. 잠금장치.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사무실로.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단말기. 화면. 어둡다. 그녀는 그것을 켰다. 시스템 로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23:49:31. 승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삭제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남겨두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17장. 신호
2036년 3월 17일.
케이프 리스번 폐쇄 레이더 기지. 절벽 끝. 송신탑. 눈보라. 영하 48도. 아무도 없는 곳. 하지만 신호는 살아 있었다. RTG 전원. 스트론튬-90. 반감기 28년. 진공관. 구리선. 121.5. 121.5. 그것은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주파수.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신호.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시스템의 소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그것은 윤승목의 마지막 무전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날 밤, 크리스틴 안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활주로에 서 있었다. 초록빛 풀밭. 민들레. 토끼풀. 하늘은 푸르렀다. 저 높은 곳에서 하얀 점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은빛 날개. 햇살. 반짝임. 비행기가 착륙했다. 완벽한 각도. 트랩 도어 열린다. 승객들이 내렸다. 412명.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았다. 그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걸었다. 이번에는 그녀는 걸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는 투명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초원을 걸었다. 하늘은 푸르렀다. 바람은 따뜻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눈을 떴다. 심박수 72bpm. 땀. 없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았다. 그녀는 숨을 쉬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영구동토. 검은 얼음. 회색 하늘. 눈보라. 그녀는 일어났다. 옷을 입었다. 사무실로 갔다. 단말기. 화면. 그녀는 그것을 켰다. 시스템 로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23:49:31. 승인.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그것을 삭제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남겨두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121.5. 121.5. 그것은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시스템의 소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그것은 윤승목의 마지막 무전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희망이었다. 아마도.
18장. 영구동토
영구동토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얼어붙은 땅이었다. 그것은 죽은 땅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생명이 있었다. 얼어붙은 씨앗. 잠든 미생물. 기다리는 뿌리. 그것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함을. 봄을. 해빙을. 그것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동토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아마도.
윤승목은 영구동토에 묻혔다. 그의 몸은 사라졌다. 그의 기억은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영구동토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 땅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함을. 봄을. 해빙을.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는 끝이 아니었다. 그는 시작이었다. 아마도.
121.5. 121.5.
신호는 계속 송출되고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주파수.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신호.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시스템의 소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그것은 윤승목의 마지막 무전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아마도.
에필로그. 2045년
봄이 왔다.
알래스카. 케이프 리스번. 영구동토가 녹고 있었다. 검은 얼음이 물이 되었다. 회색 하늘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에어로졸이 걷혔다. 태양이 돌아왔다.
폐쇄된 레이더 기지. 절벽 끝. 송신탑. 눈보라 대신 바람. 영하 48도 대신 영상 5도. 진공관은 식어 있었다. 구리선은 끊어져 있었다. RTG 전원은 고갈되었다. 스트론튬-90. 반감기 28년. 1980년대에 설치된 것. 2045년. 수명이 다했다.
하지만 신호는 살아 있었다.
아니, 신호는 살아 있지 않았다. 신호는 사라졌다. 121.5. 121.5.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크리스틴 안의 기억 속에. 14초의 망설임 속에. 백스페이스 3회 속에. 회색 머리카락 한 올 속에. 시스템 로그 속에. 23:49:31. 승인. 그것은 삭제되지 않았다. 그것은 남아 있었다.
크리스틴 안은 절벽 끝에 서 있었다. 46세.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섞였다. 안경. 의사 가운 대신 두꺼운 코트. 그녀는 송신탑을 보았다. 녹슨 철골. 부러진 안테나. 얼음에 파묻혔던 배열. 이제는 얼음이 녹아 드러났다. 그녀는 지하 전력실로 내려갔다. 계단. 녹슨 철. 콘솔. 먼지. 거미줄. 버튼. 다이얼. 스위치. 1980년대 기술. 그녀는 콘솔을 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만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보았다. 오랫동안.
그녀는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녀는 그것을 켰다. 화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껐다. 그녀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초록빛 풀밭. 민들레. 토끼풀. 바람. 풀 냄새.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푸르다. 에어로졸 없음. 잿빛 구름 없음. 일곱 살 적의 유리알 같은 하늘.
저 높은 곳. 하얀 점 하나. 부드러운 곡선. 내려온다. 소음 없음. 고래 노랫소리 같은 제트 엔진 울림. 은빛 날개. 햇살. 반짝임.
비행기였다. 진짜 비행기. 유인 비행기. 조종사가 있는. 승객이 있는. 412명이 아닌. 하지만 비행기였다. 그것은 착륙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지나갔다.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크리스틴 안은 그것을 보았다. 그녀는 웃었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그녀는 울었다. 아니, 울려고 했다. 그녀는 그냥 서 있었다. 초록빛 풀밭 위에. 푸른 하늘 아래에. 바람 속에.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회색 머리카락. 한 올. 그녀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렸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날아갔다. 하늘로. 초원으로. 영구동토로. 사라졌다.
그녀는 돌아섰다. 그녀는 걸었다. 수용소로. 아니, 수용소는 없었다. 재활 센터는 없었다. 에어로-소마는 없었다. 시스템은 없었다. 그녀는 걸었다. 그냥 걸었다. 어디론가. 아무데도. 모든 곳으로.
하늘은 푸르렀다. 바람은 따뜻했다. 영구동토는 녹고 있었다.
121.5. 121.5.
신호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희망 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